특활비는 국민 세금…지출 내용 알고 싶은 '납세자 권리' 존중해야

입력 2022-04-03 17:45   수정 2022-04-04 00:04


정부 특수활동비는 기획재정부의 ‘예산 및 기금 운영계획 지침’에 근거해 편성된다. 기재부는 국가재정법에 따른 이 지침을 해마다 각 부처에 보낸다. 특활비 용처는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 수사, 기타 이에 준하는 외교·안보, 경호 등의 소요 경비’로 규정돼 있다. 올해 특활비는 총 2396억원이다. 현 정부가 집권한 2017년 8932억원에서 크게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국가정보원이 같은 성격의 예산을 ‘안보비’로 이름을 바꿔 분리했기 때문이다.

정보기관의 특수성이 있다지만, 안보비 역시 ‘깜깜이 지출 예산’이기는 마찬가지다. 국정원을 제외한 특활비는 2018년 3163억원, 2019년 2855억원, 2020년 2351억원, 2021년 2384억원으로 편성됐다.

‘대통령 부인 옷값 의혹’에서 비롯된 특활비가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이 논란에서 일부 제기됐거나 앞으로 나올 수 있는 주요 논점 여덟 가지를 정리해봤다. 첫째 포인트는 옷값의 과다 지출 여부나 이미 지출된 특활비의 많고 적음이 본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청와대는 “연평균 96억원의 특활비를 편성했는데, 이는 역대 정부 최저 수준”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공금 유용’ ‘세금 횡령’ 스캔들이었던 이재명 전 경기지사 부인의 도청 법인카드 오용에 대해 ‘직원들의 과잉 의전’이라는 것 만큼이나 핵심 논점에서 벗어난 이상한 해명이다. 그러면서 옷값으로는 쓰이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론의 관심사는 많이 썼다는 게 아니라, 대통령 부인 옷 구입 내역이 왜 ‘국가 안보’ 사항이냐는 것이다. 아울러 법원의 공개 판결이 나왔는데 왜 따르지 않고 계속 감추느냐는 것이다. 사비를 썼다는 청와대 주장의 객관적 확인도 과제다.

두 번째 포인트는 제도를 어떻게 보완·개선할 것이냐다. 특정인 망신 주기 식보다 제도 개혁이 돼야 재발 방지에 도움이 된다. 그런데 그런 논의가 아직도 없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국회도 제도 개선 관련 논의를 하지 않고 있다. 셋째, 가장 중요한 것은 행정정보의 공개다. 처음 문제를 제기한 한국납세자연맹도 ‘지출내역’이라는 예산 정보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국민의 알 권리 차원이다. 적극적 정보공개야말로 최상의 반부패 대책이 된다. 넷째, 예산지출의 사후관리에 좀 더 엄격·엄정할 때가 됐다는 사실이다. 특활비는 영수증을 요구하지 않는다. 영수증 제출을 ‘권고사항’으로 해놓으니 대부분 현금 지출을 한다. 자칫 신용카드를 썼다가 나중에 사용처 논란에 휘말릴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기 때문이다. 민간기업에선 어림도 없는 일이다. 정부 회계감사를 책임지는 감사원에도 올해 16억9000만원의 특활비가 배정돼 있다.

다섯째, 특활비는 본질적으로 전근대적 특권이라는 비판에 유념해야 한다. 정부는 이런 지적에 분명하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요컨대 이 지출의 성격을 명확히 하고, 지속 여부를 공론에 부칠 필요가 있다. 스웨덴, 노르웨이 등 유럽 선진국에서는 이런 식의 비밀 예산이 아예 없다는 사실도 참고할 만하다.

여섯째, 차분한 공론화를 거친 뒤 계속 존치한다고 해도 편법 운용은 곤란하다. 가령 법무부 국방부 경찰청 예산으로 잡혀 있지만 실제는 국정원 몫인 ‘위장 예산’도 이제 제 자리로 바로 가야 한다. 예산 전문가들은 “국가정보원법 16조 3항(‘국정원의 예산 중 미리 기획하거나 예견할 수 없는 비밀활동비는 총액으로 다른 기관의 예산에 계상할 수 있으며, 그 편성과 집행 결산에 대하여는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심사한다’)의 남용을 막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외국인 체류질서 확립’ 명목으로 올해 97억원이 편성된 법무부 예산이 그런 항목으로 추정된다. 이런 ‘위장 예산’이 늘어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 이와 별도로 국정원의 자체 안보비 예산은 2020년 6895억원, 2021년 7460억원, 2022년 8312억원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올해 안보비 증가폭은 11.4%에 달한다. 국가기관의 이런 편법 운용은 예산지출의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 정부의 분식회계라는 비판도 나온다.

일곱째, 재정개혁 논의에도 변화가 필요해졌다. 그간 재정개혁은 팽창 예산과 그에 따른 국가채무 증가가 주된 관심사였다. 지난 대선에서도 급증하는 나랏빚이 주된 관심사였다. 하지만 앞으로 지출예산의 합리성·정당성을 따지고, 엄격한 사후 관리의 중요성에도 초점을 맞추는 쪽으로 논의가 발전돼야 한다.

여덟째, ‘납세자 권리’에 대한 재인식이다. 한국의 법률 체계는 물론 학교 교육도 ‘납세자 권리’보다는 ‘납세자 의무’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납세자는 특활비의 편성과 지출, 사후관리에 대한 일련의 문제를 제기할 분명한 권리를 갖고 있다. 정부는 이 권리 행사에 마땅히 응해야 한다.

이에 따라 당장 세 가지 과제가 새 정부에 주어졌다. 내년 예산 편성에서 관례대로 특활비를 계속 둘지, 둔다면 공개 여부는 어떻게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방향을 크게 바꾸려면 국회의 입법적 뒷받침도 필요하다. 지출 방식을 손보고 사후관리까지 강화하려면 재정법 등의 보완이 뒤따라야 한다. 국회가 여소야대 구조여서 수월한 일이 아니다. 감사원의 특활비 지출내역 감사에도 획기적 변화가 필요해졌다. 국정원 안보비에 대한 국회 심사도 계속 ‘치외법권’ 지대에 두기는 어렵다. 어떻게 되든 재정지출의 투명성과 정당성 강화가 핵심이다. 그간 급증하는 나랏빚 걱정이 앞섰지만, 제대로 지출되고 있는지 살피는 것도 매우 중요해졌다. 그렇게 납세자 권리를 살려 나가야 한다.
해외 주요 선진국은
노르웨이 캐나다 등 특활비 없어…프랑스는 2002년 비밀예산 폐지
해외 선진국들은 정부의 특수활동비를 아주 제한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영수증 없는 지출은 거의 없다. 그동안 납세자연맹이 노르웨이 캐나다 프랑스 총리실에 개별적으로 문의한 결과도 그렇다.

노르웨이는 “총리실에 특수활동비와 같은 기밀 예산이 있는가, 만일 총리가 예산을 사용하고 영수증을 첨부하지 않으면 어떤 책임을 지는가”라는 질의에 “특활비 같은 예산이 없다”는 명료한 답변을 보내왔다. “총리가 정부 예산을 쓰고 영수증을 첨부하지 않으면 사임 또는 탄핵될 것”이라는 설명이 곁들여졌다. 캐나다 총리실도 같은 질문에 “비밀스런 예산은 정부 지출의 투명성과 신뢰성이 직결되는 문제로, 비밀 예산을 금지하고 있다”며 “총리와 각 장관은 영수증을 비롯한 예산지출 내역을 공개하고 있다”고 답해 왔다.

프랑스 정부도 비슷하다. 법원행정처가 2020년 주한 프랑스대사관을 통해 진행한 사실조회에 따르면 2002년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 때 비밀예산이 폐지됐다. 다만 국가안보총국 등 국가안보와 관련된 부서에 일부 비밀 예산이 존재한다.

2017년 31세로 세계 최연소 총리가 되면서 주목을 끌었던 오스트리아의 제바스티안 쿠르츠가 지난해 후반 총리직에서 물러난 데도 공금유용 문제가 있었다. 서구 국가에서 공금유용은 중대한 범죄다. 소액이어도 세금의 ‘사적 유용’은 안 된다는 게 철칙이다.

투명한 예산 운용과 관련해 가장 주목할 만한 나라는 스웨덴이다. 스웨덴 헌법은 국민의 표현 자유와 언론 자유를 폭넓게 보호하고 있다. 예산 집행 정보는 언제든 원하면 얻을 수 있게 돼 있다. 이 덕분에 스웨덴의 행정과 예산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가장 투명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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